Future Briefing


[제5호] ‘정당 재편성’으로써 바른미래당의 형성과 개혁과제-조정관(전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18.02.20




한국정치의 새로운 서막


한국정치의 새로운 막이 오르고 있다.

대한민국이 생긴 이래 1987년 민주화에 이르기까지 한국정치를 지배했던 민주 대 반민주의 적대적 정당 정치는 이미 그 효용을 다했다. 물론 제왕적 대통령제를 포함한 각종 권위주의적 제도와 행태는 여전히 개혁대상이고, 수구적인 비민주 지향세력이 우파에도 좌파에도 여전히 일부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누가 더 민주적이냐를 가지고 경쟁하는 정치, 상대방을 함께 할 수 없는 세력으로 규정하고 절멸시키려는 정치는 이제 더 이상 경쟁의 핵심이 아니다. 201712월 박근혜 탄핵은 어느 한 정파만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보수, 진보를 넘어서 대다수 국민이 지지했으며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새누리당 의원들까지 상당수 동참함으로써 234표의 탄핵 발의가 가능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2003년 열린우리당부터 본격적으로 시도해온 좌파 대 우파의 정치 또한 현실문제 해결 능력을 보이지 못하고 적대적 공생에만 그침에 따라 호소력을 잃고 있다. 민생에서는 중도를 벗어나지 않았지만 가치에서 진보를 너무 급속히 추진했던 노무현정권의 실패는 그 정반대쪽 이념진영에서의 이명박 정치로 반사되었고 그 파장은 무능한 박근혜정권까지 이어졌다. 지난 15년간 진보와 보수를 내세워 온 두 진영의 정당정치는 일방주의와 대결로 점철되었을 뿐, 대한민국 공동체를 진정으로 한걸음 전진시키는 역할을 수행하지는 못했다. 결국 이 비생산적이고 갈등적인 정치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한국정치 초유의 방식으로 마무리되었다.

 

87년 정치체제의 골간이라고 할 영호남 지역주의 정당정치는 어떠한가? 그 폐해에 대해서는 상론할 필요도 없는 지역주의 정당정치는 87년 김대중-김영삼의 분열에 의하여 정립되었고, 903당합당으로 공고화되었다. 그러나 지역주의 정치는 김영삼, 김대중이 순차로 정권을 잡음에 따라 점차 해소될 수도 있는 정치적 조건이 형성되었다. 남은 것은 호남이 겪고 있는 사회경제적 격차를 해소해주며 국가 균형발전의 틀 속으로 통합해내는 일이었다. 실제로 김대중 이후 호남 민중은 대통령 선거에서 호남 출신이 아닌 노무현, 안철수, 문재인 등을 선택하며 섬이 되기를 거부하는의식적 노력을 기울였다. 그렇지만 호남민은 내부 정치 즉 국회의원 총선 및 지방선거에서는 여전히 민주 대 반민주의 구호를 재생산하는 정치인들이 이끄는 지역주의적 동원을 거부하지 못하고 머물러왔다.

 

하지만 안철수의 등장, 그리고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의 분당과 2016년 국민의당의 성립은 호남 유권자들에게 드디어 정당 선택의 온전한 기회를 제공하게 되었다. 이제, 영남 지배 권력에 대한 반대를 위하여 좋든 싫든 하나의 호남당을 무조건 지지해야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호남민은 2016 총선에서 6 3의 비율로 국민의당과 민주당을 지지했고, 2017 대통령 선거에서는 처음으로 특정인 몰표를 버리고 안철수와 문재인을 3 6의 비율로 나누어 지지했다. 한편 영남은 21세기 들어서 호남보다는 쏠림이 덜한 특성을 이미 보여주고 있었으며, 박근혜 탄핵을 계기로 그동안의 수구적 보수 정치를 비판적으로 재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맞았다.


87년체제를 넘어서는 정당 재편성

 

그러므로 한국 정당정치는 2018년 현재 중대한 변화의 도상에 있다. 그 변화는 정치이론에서 '정당 재편성'이라고 부른다. '정당 재편성'(party realignment)은 중대 이슈를 바탕으로 기존의 정당간 균열(서로 다른 정당을 구분하는 주요 측면)을 대신하는 새로운 균열 및 경쟁이 형성되어 정당 혹은 정당체계가 바뀌는 것이다. 세대교체 등으로 인한 장기적인 유권자 구성의 변화나 전쟁, 민주화, 대공황과 같은 급격한 사회경제적 변동이 '정당 재편성'을 촉발하는 환경적 요인들이다. '정당 재편성' 이론에서는 30여년을 주기로, 즉 세대가 바뀌면 유권자 구성의 변화와 시대적 변화가 만들어낸 변화가 선거 등을 거치면서 정당체계를 크게 바꿀 수 있다고 본다. 우리 정치에서 시민권이 확립된 혁명이 19604.19라고 본다면 4.195.16으로 성립된 제3-5공화국의 시대, 즉 권위주의 산업화시대는 약 30년을 유지했고 19876월항쟁으로 종료했다. 그리고 그 시점에 지역주의 정당체계가 시작되었다. 이제 민주화시대라고 할 수 있는 87년 체제도 역시 약 30년이 흘렀고 많은 문제를 겪었다. 변화된 환경 아래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는 촛불시위가 발생하였고 이는 정치의 큰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즉 지금은 정치 변화의 필요조건이 성숙한 때이다.

 

그러나 '정당 재편성'의 충분조건은 지도자들의 의지이다. '정당 재편성'은 아래로부터 오기보다는 정치 엘리트에 의한 동원이 촉발한다. 즉 정치지도자들이 사회적 변화와 정치적 필요를 읽어내고, 새로운 이슈 또는 새로운 정치 방식 등 문제 제기를 통한 정치적 동원을 결행해야만 '정당 재편성'은 시작되며, 이에 대해 (이미 변화 가능성을 잠재한) 당원들과 유권자들이 응답하면 '정당 재편성'이 이루어진다.

 

2016-18년의 한국 정치에서는 바로 그 촉매 역할을 안철수와 새정치 세력, 그리고 유승민과 개혁보수 세력이 담당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016년 한 해 동안에, 기존 민주당 정치의 한계를 비판하며 국민의당이 만들어졌고, 기존 새누리당 정치를 넘어서기 위해 바른정당이 만들어졌다. 이념 성향을 굳이 따지자면 전자가 다소 진보 쪽에서 출발했고 후자가 보수 쪽에서 시작했다고 할 수 있지만, 두 정당은 모두 이념적 기반에 얽매이지 않고 실사구시의 중도적 가치를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를 추구해 왔다. 두 정당은 모두 기존 한국 정당정치의 양당제적 원심력에 대항하며 다당제의 확립을 존립 근거로 삼고 구심력을 확보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두 정당은 각각 호남과 영남을 주요 기반으로 출발했지만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지역주의 정치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과감한 외연확장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가 바로 2018213,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합당이고, 바른미래당의 출범이다.

 

하지만 모든 종류의 '정당 재편성'이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바른미래당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두 정치세력 모두 이미 많은 이탈을 겪었고 지도력도 깊이 상처를 입었다. 바른미래당의 왼쪽과 오른쪽에 포진한 이념 표방 세력들은 모두 강력한 수구적 원심력을 작동 중이다. 집권 민주당이 향유하고 있는 높은 지지율과 뿌리 깊은 인적 기반을 갖고 있는 수구 우파의 능력은 중도세력의 지속을 위협하고 있다. 그리고 기존 정치에 익숙한 여론은 신당이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가차없이 실망하고 내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


바른미래당 성공을 위한 개혁 과제


그렇다면 바른미래당은 어떤 정치를 해야 성공할 수 있을까? 물론 국민이 원하는 정치를 하면 된다. 2018년 현재, 그것은 첫째도 둘째도 개혁이다. 정치가 제 역할을 하는 개혁이다. 경제가 제대로 굴러가도록 막힌 곳을 뚫고 길을 여는 개혁이다. 안보가 튼튼해지고 국민이 더 안심하고 살게 하는 개혁이다. 사회가, 교육이, 문화가 모두 각각 제 갈 길을 가서 서로 어우러져 번영된 나라의 미래를 열어가는 개혁이다. 바른미래당은 이러한 전면적 개혁의 물꼬를 틔우겠다는 의지를 처음부터 강력히 표현해야 한다.

 

바른미래당이 추진할 구체적 개혁의 방향은 분명하다. 승자독식의 다수제 민주주의를 합의제 민주주의로 바꾸어 내는 일이 급선무이다. 일차적으로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에서 권력분점과 비례대표 선거제도 그리고 다당제 정착을 위한 제도들을 만들어내는 견인차가 되어야 한다. 그것 없이 다른 개혁은 한 발도 나아갈 수 없다. 바른미래당은 창업혁명의 주창자이어야 한다. 규제 개혁과 혁신의 선도자이고 지속가능하고 실현가능한 노동 및 복지 개혁의 추진자여야 한다. 그것 없이는 일자리도 성장 동력도 얻어질 수 없고, 민생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바른미래당은 튼튼한 안보와 안전한 사회를 위해 기존 도그마를 벗어던지고 실사구시의 자세로 정권에 협조하고 비판해야 한다. 북핵과 ICBM이 한반도를 덮친 현실에서 기존의 햇볕정책도 대결정책도 그 자체로서 지속될 수는 없다. 안보가 없이는 자유로운 대한민국의 미래 자체가 없다.

 

1년 전 겨울 온 국민이 들고 일어난 촛불의 혁명적 에너지는 지금 잠시 휴지기를 갖고 있지만 결국 세상이 크게 바뀌기를 여전히 열망하고 있다. 국민은 정치인들이 권력 놀음을 하지 말고 국민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복무하기를 원한다. 국민은 정치인들이 진실하기를 원하고 책임지기를 원한다. 바른미래당은 그런 정치를 실천할 것이라는 믿음을 국민에게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세대교체하는 정당, 당원이 소중한 정당, 효율적인 정당, 책임지는 정당이 되기 위하여 늘 혁신하는 정당이 되도록 또한 노력해야 한다.

 

바른미래당은 이념과 진영으로부터 자유로운 정당임을 표방하고 있다. 그 벗어남을 토대로 바른미래당은 부패한 현재의 87년 정치체제를 해체하고 21세기 대한민국을 이끌어나갈 미래 체제를 수립하는 개혁자의 역할을 자임하기를 바란다. '정당 재편성'의 고전적 사례들인 1890년대 미국의 인민당처럼, 1930년대 미국의 뉴딜 민주당처럼, 그리고 목하 진행 중인 프랑스 마크롱의 전진(앙마르슈)’처럼 그렇게 성공하는 개혁의 정치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이 보고서는 싱크탱크 미래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